NEW Bill for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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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찢어졌네.”

 

 속상한 목소리로 입가를 만지는 빌의 모습이 어딘가 웃겼다. 나를 걱정하는 빌의 마음이 웃긴다는 건 전혀 아니었다. 빌의 표정은 꼭 자신이 아프다는 듯,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나를 웃기는 건, 애초에 내 입술이 찢어진 이유가 빌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아…. 허니, 더요. 더. 미안해요. 그래도, 아…, 좋아.’

 

 애타는 목소리로 제 것을 내 입안에 더 밀어 넣던 간밤의 빌, 반대편 손으로는 내 뒤통수를 누르던 간밤의 빌이 바로 원흉이었으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언제봐도 적응될 리 없는 무지막지한 빌의 것이 이유 그 자체겠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이건….”

 

 자신이 생각해도 내 입가가 찢어진 이유가 하나밖에 없는지 빌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별안간, 자신을 흘겨보는 내 눈가에 입을 맞추며

 

 

 “어제 나를 못 참게 만든 게 누군데요.”

 

  내게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뻔뻔해.”

“그렇게 말하는 허니도 뻔뻔한 거예요. 내가 허니를 보면서 참을 수 없다는 건, 허니가 제일 잘 알잖아요.”

 

 자신의 말엔 틀린 게 전혀 하나 없다는 듯한 당당한 표정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헛웃음이라는 건 온전한 행복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지만, 어쨌든 웃음은 웃음이었다. 적어도 빌에겐 그런 의미였다.

 

 내 헛웃음에 단호한 표정을 짓던 빌이 웃기 시작했고, 휘어지는 눈가에 나 역시 이번에는 웃음을 내뱉었다.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그 콩깍지는 언제 벗겨질까요?”

“지금 허니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거예요?”

“그 어투는 뭐예요. 누가 들으면 내가 신성모독이라도 한 줄 알겠어요.”

“나한텐 거의 그 정도의 소리였어요. 허니가 아름다우니 아름답다고 하는 거죠.”

 

 내 사랑. 내 뺨을 손끝으로 매만지던 빌이 이내 허리를 숙여 얼굴에 입 맞췄다. 내 얼굴 곳곳에.

 

*

 

 “-Hello, beautiful.”

“-Get out of here.”

 

 빌의 얼굴만 나오던 화면에 다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최근 빌이 촬영 중인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인 터라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남자. 그 역시 내가 낯선 건 아닌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는데, 하필 ‘beautiful’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터라 빌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정색하며 당장 제 트레일러를 나가라는 듯 문을 가리켰으니까.

 

 내게는 절대 보일 리 없는 저 표정. 그 표정조차 잘생겨서, 솔직히 말하자면 냉담한 그 모습이 묘하게 섹시해서, 나는 빌의 반사회적인 태도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빌은 동료를 트레일러에서 내쫓는 데 성공했다. 문이 닫히자 곧장 일어나 문을 잠근 빌은

 

 “-허니와의 시간이 줄었어요.”

 

 아쉬움을 표했다.

 

 방학이라 빌의 촬영에 맞춰 내가 미국에 함께 있는데도, 빌은 촬영장에만 가면 내게 페이스톡을 걸었다. 촬영을 위해, 빌이 미국에 그리고 내가 한국에 있던 예전처럼.

 

 “그래도 이따 보잖아요.”

“-지금 못 보니까요.”

 

 지금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니기라도 한 건지 속상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빌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단번에 ‘지금 보고 있잖아.’라고 했을 텐데, 상대가 빌이기 때문에 내가 할 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를 비이성적으로, 그저 사랑에 빠진, 감정에 매몰된 사람으로 만드는 유일한 사람인 빌이 한 말이었으니까.

 

 “이따 촬영하는 씬이 액션씬 아니었어요? 알렉이랑?”



 “-알렉?”

“알렉스.”

“-내가 알렉이란 이름에 뭐가 있나 봐요. 형도 그렇고, 알렉스도 그렇고.”

 

 다른 남자 이름 친밀하게 부르지 마요. 허니 입에서는 내 이름만 나오면 좋겠단 말이에요. 덧붙여진 빌의 진심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할 법한 유치한 말이기도 해서

 

 “그래서 빌을 제일 많이 부르잖아요.”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집에 계속 있을 거죠?”

“아뇨. 잠깐 마트에 나가려고요. 들어오는 길에 빵도 좀 사고. 빵 굽는 시간이 10시랑 3시라고 했죠?”

“-아크네 말하는 거죠? 10시랑 3시 맞아요. 빵은…, 음 갓 구운 빵은 내가 사줄 수 없지만 마트는 내가 들려도 되는데요. 아니면 이따 같이 가도 되는 거고.”

“그럼 빌 저녁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요. 오늘 7시쯤 끝난다고 했잖아요.”

“-아니면 밖에서 저녁 먹고 같이 장 봐도 되는 건데. 허니 혼자 가는 게 내키지 않아서 그래요.”

“내가 뭐 앤가.”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불만으로 올라간 빌의 한쪽 눈썹은 금방 내려와야 했다. 트레일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시계는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빌이 다시 촬영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했다.

 

 “-가야겠어요.”

“응. 다치지 말고, 잘하고 와요.”

“-난 안 다치겠지만, 우리의 시간을 뺏은 알렉스는 좀 다칠 거예요.”

 

사랑해요. 곧 봐요. 화면에 키스를 날린 후 빌이 전화를 끊었다.

 

*

 

 도대체 고기는 왜 사도 사도 부족하기만 한 건지. 빌의 체구를 생각한다면 먹는 양이 많은 건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장을 볼 때마다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빌과 함께한 오랜 시간 동안 적응되지 않는 유일한 건 이런 거였다. 나라면 족히 두 달은 먹을 양의 음식을 며칠 간격으로 사야 한다는 것. 부족하지 않게 스테이크용 안심을 몇 팩이나 장바구니에 넣었다. 오늘은 연어를 좀 구워줄까. 내가 먹을 건 요플레 한 통만 담은 것과 달리 이미 장바구니에는 빌이 먹을 게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발은 바삐 움직였다. 적응되지 않는다는 말이 싫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었으니까.

 

 해산물 코너로 가기 전 내가 먹을 버섯을 좀 보는 사이, 손에 들고 있던 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인은 언제나 그렇듯 빌이었다.

 

 “-허니?”

“응, 나예요. 잠깐 시간이 비었어요?”

“-촬영이 조금 일찍 끝났어요. 이제 집으로 출발하려고요. 허니는 어디예요?”

“아…, 벌써?”

“-뭐야, 이건. 나를 일찍 보는 게 싫어요?”

“그게 아니라…. 사실 책 읽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가 늦게 나왔거든요. 나 이제 마트 도착해서….”

“-잘됐네요. 그럼 내가 그리 갈게요. 아마 한 2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허니?”

“나야 문제 될 거 없죠.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주차하고 다시 전화할게요. 보고 싶어요.”

“조심해서 와요.”

“-보고 싶다니까요?”

“나도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얼른, 조심해서 와요.”

 

 사랑해요. 빌이 전화를 끊기 전에 언제나처럼 하는 말.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늦게 나와서 마음이 조금 급했는데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팽이버섯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

 

 “수영?”

 

 뒷좌석에서 장 본 짐을 꺼내던 빌은 내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단어에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나조차도 생각해본 적 없던 수영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마트에서 빌을 기다리는 사이 우연히 옆집에 사는 줄리를 마주쳤고, 그녀로부터 수영을 추천받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미안…, 힘들게 하고 싶진 않은데, 한 번만 더요,’

 

 빌의 체력과는 너무 다른 내 체력 때문만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물론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건 예전부터 하던 결심이었지만…. 매번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었다. 큰맘 먹고 시작했던 필라테스 역시 잠깐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방학이었고 크게 바쁜 일이 없으니, 빌이 없는 동안 마냥 책만 읽기보다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별로예요?”

“별로라기보다는. 그냥 허니가 운동을, 수영을 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가서요.”

“완전히 결정한 건 아니고요. 그냥 해볼까 고민하는 거죠. 좀 긍정적인 확률로.”

“운동을 하는 게 나쁘진 않으니까요. 힘들긴 해도 크게 다칠 일이 없으니 수영이라면 나도 안심되긴 하고요. 허니만 좋으면 난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요.”

“빌이 괜찮다고 하면 다 괜찮죠, 뭐.”

 

 좀 전에 내가 수영을 말했을 때처럼 빌은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할 법하지 않은 비주체적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렸음에도, 그 표정은 전혀 불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날 더 생각하는 게 빌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열쇠를 돌렸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현관에서 빌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어쩌자고 이러는 거예요.”

“응?”

“하필 둘만 있을 때 그렇게 예쁘게 말하면 어쩌자고요.”

 

 빌이 내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몸이 닿자마자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다른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크게 튀어나온 그 무언가가.

 

 “내가…, 뭘, 무슨 말을 했다고 얘가 이렇게….”

 

 당황스러움에 말이 다 나오지도 않았다.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며 빌을 밀었지만, 당연하게도 소용없는 몸짓이었다. 빌은 저를 밀어내는 내 두 손을 가볍게 한 손으로 잡았으니까.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줬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 허니가. 허니 판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기준으로 둔다는 말을 했잖아요. 근데 그게 나라는 거고. 이유를 설명하는 빌의 목소리는 손만큼이나 다급했다.

 

 “괜찮겠어요?”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던 빌의 손끝이 입술에 닿았다. 아침에 만졌던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지만, 담긴 감정은 명백히 달랐다. 아침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욕정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대답 없이 혀를 빼내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 움직임을 보자마자 



 Shit, 짧은 욕설을 내뱉은 빌이 다시 돌진하듯 입을 맞췄다.

 

*

 

 “잠깐.”

 

 몇 번이나 나를 더럽힌 뒤, 나를 씻기던 빌의 손이 별안간 멈췄다. 응? 시야를 가리는 물줄기를 닦아내며 몸을 돌렸다.

 

 “수영을 한다는 거면, 누가 지금 이 몸을 본다는 거잖아요.”

 

 허리를 잡은 빌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누가 내 나체를 봐요. 수영복을 입는데.”

“아니…. 아니, 말이 안 되는데.”

 

 이러다 수영장에서 래시가드 입으라고 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빌의 손에 들려 있는 샤워볼을 뺏었다.

 

 “아까는 나랑 같이 해변 가서 놀고, 태닝할 생각에 신나있었잖아요.”

 

 빌이 내게 해줬던 것처럼 샤워볼로 빌의 몸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 못 했던 거죠. 허니의 비키니 차림을.”

“이건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보수적임인데?”

“말이 안 되잖아요. 이 몸을 누구한테 보여주라는 거예요.”

 

 정말 말이 안 될 것도 많다. 누가 보면 세상 사람들은 다 평상복을 입었는데, 나만 수영복을 입는 줄 알겠어. 질투라고 치부해주기에도 지나친 빌의 감정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니가 문제예요.”

“응? 갑자기?”

“허니가 나를 자꾸 이상하게 만들잖아요.”

 

 세상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남자가 될 줄이야. 자기의 상체를 배회하는 내 손을 잡으며 빌이 말했다.

 

 “나한테 정떨어지진 않았죠?”

“이것도 너무 갑작스러운 말인데요.”

“내가 너무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요. 혹시나 해서.”

“이상한 소리긴 했죠. 그렇다고 내가 빌을 싫어할 리가 있겠어요?”

“이게 다 허니를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그냥 사랑해줘요. 이해해달라고 하진 않을게요.”

 

 나를 잘 아는 빌이 할 법한 말. 이해는 바라지 않으니, 계속 사랑만 해달라는 그 말. 그 말이 지독히도 달콤하게 들려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올라가는 내 입꼬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게 하나 있었다. 하나는 빌의 입꼬리였고, 다른 하나는 빌의 것이었다.

 

 “또?”

 

 현관에서부터 거실 그리고 방까지, 그게 다 몇 번이었는데.

 

 “이것도 다 허니 때문이에요.”

 

 날 보고 웃는 허니가 너무 아름다운 탓이라고요. 그렇게 덧붙이며 빌이 내 손에 들린 샤워볼을 뺏어 대충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그렇지 않아도 붙어 있던 몸을 더 밀착하며, 내게 입 맞췄다.

 

 언제나처럼 이 모든 게 다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닐 리가 없었다.




+

 

 얼마 전, 빌 포 허니 시즌2에 대해 기대하는 글을 받았어요.

사실 시즌2가 계획에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제가 쓰는 다른 글에 빌 포 허니의 분위기가 많이 묻어나온다고 생각했던 터라,

차마 시즌2까지는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면 보시는 여러분께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부터 제게 의미가 큰 글이라,

그냥 이렇게 끝내기엔 또 미련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번외 아닌 번외로 짧게나마 들고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던 빌과 허니의 모습이 여전하다고 느낀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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